별 일 없이 산다 – 6월 20일 아무말 대잔치

최근 XXXX (볼드모트 아닙니다.) 라는 잠재고객과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중간에 파트너사가 2개나 끼어 있어서 그런가 고객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 어려운 게 문젠가 트러블슈팅이 이만저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신기한 404 Not Found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현재형이긴 하지만) 아무리 테스트를 돌려도 돌려도 이것은 오리진 문제라고 나의 모든 머신들이 드높여 소리치고 있어서 나는 나름 톤을 부드럽게 하면서  오리진 에러를 고쳐주시기 바랍니다. CDN은 오리진이 살아있을 때 캐시를 해서 딜리버리를 하는 아이에요 저희가 콘텐츠를 창조할 순 없어요.  라는 나의 마음의 소리를 전달하고 있는데 고객은 블랙박스라 보이지도 않고 1차 파트너, 2차 파트너만이 “아냐, 오리진은 멀쩡하다니까. 너는 틀렸어!” 라며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나는 “오리진이 멀쩡하지 않다” 는 증거를 제시하느라 반복적으로 수 시간씩을 쓰면서 지쳐가고 있다.
어제 트러블슈팅을 이래저래 하면서 오리진에서 에러가 나는 것을 많이 발견해서 그 내용과 함께 팔만대장경 두개를 써서 보냈는데 제발 네가 뭔 말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리진은 멀쩡하다. 클라우드플레어를 쓸 때만 오류가 발생한다고 몇 번을 말하니? 하면서 돌아오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요… 제발…

생각해 보면 나는 공공기관에서 온실 속에 자란 편이라 (이상한 사무관 주무관도 거의 안 만났음.) 앞으로 필드에서 customer facing 업무를 할거라면 여러 유형의 고객을 만나보는게 좋기는 하다. 분노 조절 좌절 조절 짜증 조절도 배울거고. 내 스스로도 기본적으로는 벽보고 일하는 게 좋지만, Customer Relationship이 아예 없는 직군보다는 적당히 있는 편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직한 지 1년이 되어 가지만 SE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솔직히 customer facing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고객으로부터 들으면서 배우는 것들이 정말 많다. 벽보고 일하면서 구글링하는 것보다 훨씬 값진 현장 경험이고 이따금 자극도 되어서 뭐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늘 이렇게 노력을 하는데 잘 안된다니까. 화가 날 땐 나는 거라.

회사 이름 달아놓고 블로그에 뭘 쓰는 건가 싶기는 하다. 오늘 발견한 이 기사를 보면 더더욱 그렇다:

Twitter: Anyone Who Writes “Opinions Are My Own” in Their Bio is Permanently Banned From Twitter

We get it. You don’t want your boss to fire you for the dumb shit you write on Twitter. This is the wrong way to go about it. First of all, if you say something stupid on the Internet and the Internet recognizes the stupidity of the thing you said, there is no saving your job. We’ve seen politicians and celebrities toppled by social media, so we’re pretty sure your job as Associate Manager in Charge of Sitting Around and Playing Angry Birds isn’t safe from an Internet shitstorm. If there was something that could protect you, twenty words in your Twitter bio wouldn’t be it. Finally, no shit the opinions are your own; opinions are, by definition, your own. Anyone who puts this in their bio doesn’t understand the Internet and should have their Twitter privileges revoked. [Ed. Note: Our corporate overlords asked me to let our audience know that the Author’s opinions are his own and do not reflect the views of Complex Media.]

Article:
https://www.complex.com/pop-culture/2013/10/20-improvements-your-favorite-social-media-sites-need/twitter-anyone-whowrites-opinions-are-my-own-in-th

백번 맞는 말인게 ‘개인 의견입니다.’ ‘회사와는 무관합니다.’ 라고 골백번 고쳐써봤자 내가 C모 회사 소속인 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더 너그러워지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걸 강조해봐야 후후후 무슨 개소리를 하려고 경고를 하는걸까? 같은 반응을 얻으면 모를까 그다지 얻는 것이 없을 것이다. 법정에서도 별 도움이 안 되겠지. 그래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머리속은 폭풍우가 치더라도 일단 가만히 있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것일 텐데 이런 소리를 쓰면서 나는 블로그를 왜 하고 마음 속에 머무는 소리를 탈탈 털어놓고 있는가… 어떻게 사는 게 현명한지 안다고 늘 그 길로 간다는 법은 없는 것이고 가끔 어리석은 길이더라도 그 길이 좋으면 가는 사람도 있고 그런 거지 뭐

동료들과 캄보디아 여행을 간다. 호주사람, 대만사람(내사랑 야나님), 싱가폴사람, 한국사람 이렇게 넷이서. 이번주말이고 Last Minute 이 되니까 언제나처럼 귀찮아졌다.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 싱가폴 세금 내야 되는데. 첫 세금인데 늦어서 벌금 낼 듯. 싱가폴 세금 짱 싸다 2%도 안 내는 것 같다. 그런데 한국 살 때도 몇% 내는지 열심히 계산 안 했던 지라 질문받으니 할 말이 없더라. 찾아볼까?

한국 실질 소득세율, 4.3% 불과…부과액 3분의 2가 ‘연말정산’ 환급
원래는 15.5%…각종 공제 제도로 환급액 많이
근로자 절반 이상이 소득세 ‘제로’
근로소득공제 이외 공제는 빈부격차 악화시켜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15/2017091501349.html#csidxf835b2d2ba0706a89978df3931424e8 

구글링했을때 바로 나왔지만 맘에 안 드는 언론이라 읽지는 않았는데(!!?!) 실질 소득세율 4.3% 정도 되나 보지 뭐. 소득이 많지도 않았고 떼어가는것도 크게 느껴지지 않긴 했다. 그렇게 보면 싱가폴이나 한국이나 복지 적고 세금 적은 나라에 속한다고 봐야 되겠네. 한국은 소득도 적고 야근도 많고 문제를 얘기하자면 끝없지만 일단은….

아, 제습기 샀다. 세금 내고 Home maintenance 해야 된단 생각하다 보니까 떠올랐네. 드디어 옷에 곰팡이 피는 빡치는 사태를 정리할 수 있겠다. 엄청 작은 걸로 사서 딱 옷장 제습으로만 사용 가능할 것 같다. 지금까지 염화칼슘 들어 있는 레드마트 dehumidifier 하고 뭐 나프탈렌하고 천연 제습제인가 전기 안 드는 방식은 대부분 시도해 보았는데 응 없어~ 곰팡이 폈어~로 귀결되어서  그냥 사버렸다. 나는 돈을 버는 훌륭한 직장인이야 곰팡이랑 오래 싸울 시간 없다 현대 문명의 맛을 봐라. 맘에 드는 옷 곰팡이 피면 버리지도 못하고 입기도 찝찝하고 진짜 그런 딜레마가 없다…

제습기는 큐텐에서 샀는데 싱가폴에서 사는 게 훨씬 이득인 품목에 속했다. 40달러도 안 준 듯?;; 한국과 물가를 비교하자면 전반적으로 싱가폴이 조금씩 더 비싼 편인데 가끔 제습기같이 싱가폴에서 사는 게 훨씬 효자인 녀석이 등장한다. 말고는… 패션 아이템은 싱가폴에서 구매하지 않는 원칙으로 살고 있다. 벨트가 없어서 바지가 흘러내리길래 대충 하나 사려고 Bedok Mall 유니클로에갔는데 40달러. 한국에선 5천원이면 사던데??? 아니 제습기랑 벨트랑 어떻게 가격이 똑같애??? 그래서 한국 지마켓에서 해외배송 했다는 슬픈 벨트 이야기. 나머지도 싱가폴이 더 저렴한 아이템이 뭔지 당장은 생각이 안 나는 걸 보니 별로 없나보다.

나의 애니메이션으로 배운 야매일본어를 잊지 않을 겸 해서 새로 오신 Trilingual 한국분과 Japanese lunch free-talking 세션을 가끔 하고 있는데, 지난 번엔 영어 온리 화자가 많이 참여하는 바람에 Language session 대신 영어로 진행하는 Japanese culture session 이 되어버린 바가 있다. 여기에 재미있는 대화가 있었는데:

야나님 : 나는 일본어로 말할 때 사실 편한 것 같아. 영어에 비해 존칭 표현을 쓰기가 명확하고 쉬워서 상대방에게 나의 존중과 겸양을 쉽게 표시할 수 있어. 영어는 이런 부분이 좀 불명확해서 고객에게 영어로 말할 때 내가 보여주고 싶은 만큼의 respect 를 못보여준다는 느낌이 들어.

 

나 : 일본어가 너의 겸양을 상대에게 보여주기 쉽다는 점은 동의해. 다만 나는 그 이유 때문에 일본어가 싫어. 일본어만 싫은 게 아니라 한국어도 마찬가지야 그런 점에선 똑같거든. 예를 들어 ‘You’는 영어에서는 그냥 ‘You’인데 일본어에서는 あなた・君・お前로 구분이 되고 한국어도 마찬가지로 you의 직역인 ‘너’는 조심해서 써야 되는 하대 표현이야.
이처럼 겸양 표현과 하대 표현이 명확하게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더더욱 사회의 암묵적 서열 관계에 따라 “너는 모두에게 겸양 표현을 써야 하지만 상대방은 너에게 하대 표현을 쓸 자유가 있다” 는 상황이 종종 와. 예를 들어 너의 팀장님은 너보다 높은 사람이기 때문에 너를 ‘君’ 라고 부르면서 어미 표현 같은 걸로 은근히 하대할 수 있지만 너는 깍듯이 ‘Last name +positionさん’ 하면서 겸양 표현을 챙겨 쓰는 게 사회적 프로토콜이라는 거지.
이런 언어의 미묘함으로 서열을 확실히 하는 것은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당연한 것인데 여기서 영어로만 말하기 시작하면서 한 번도 접하지 못한 거야. 나는 원래 서열이 낮아서 그랬는지 영어로 살기 시작하면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존중’ 커뮤니케이션을 생애 최초로 시작했는데 얼마나 좋았는지 모르고, 사회적으로 하대받는다는 기분이 확실히 덜 들어.

야나님의 코멘트가 안좋은 곳을 스쳐서 (내가 한국어/일본어에 대해 극혐하는 부분을 좋아하고 있다. 역시 사람은 다양하다) 한참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직장 매니저 뿐 아니라 나이만 많은 사람이어도 너를 그냥 First name 으로 부를 수 있지만 네가 그/그녀의 First name 을 똑같이 불렀다간 "버르장머리 없는 X" 이 되어버린다는 점, 그래서 싱가폴 오피스에도 한국 사람들끼리는 미묘하게 부르는 방법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언어는 문화를 반영하고 사람의 정신세계를 정의한다는 점에서 일본어로 ‘남편’ 을 ‘主人’ 이라고 부르는 잔재는 아주 X같다는 점 etc…

Translations of husband
noun
夫 husband
旦那 husband, master
亭主 husband, host, master, landlord, innkeeper
夫の君 husband
主人 master, husband, owner, host, mistress, landlord
主 chief, lord, owner, god, supervisor, husband
夫君 husband
連れ合い wife, husband
ご主人 husband
配偶者 spouse, wife, husband, consort

슈진은 일어 표현 중에서도 좀 많이 미친 표현에 속하긴 하지만… 그래서 한국어/일본어로 권력을 ‘얻는’ 쪽의 집단 (나이 많은 남성) 이면 잘 느끼지 못할 미묘한 하대 표현들이 언어 구석구석에 melted cheese 마냥 녹아들어가 있고 나는 권력을 잃는 쪽 집단인 나이 어린 여성이었기 때문에 본투비 한국어 화자로서 잃는지도 잘 모르고 있던 권력과 권리들을 영어로 살기 시작하고 갑작스레 얻게 되어서 어리둥절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초딩레벨이긴 하지만 중국어는 확실히 한국어/일본어에 비해 평등한 편이 아닐까 넘겨짚고 있다.

한국어/일본어 관련해서, 내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싫어하는 것은 다른 것보다도 나이 서열인데, “나이 서열 X같다!” 고 이야기하면 한국일지라도 대부분 무리 없이 사회적 동의를 기대할 수 있는 반면 (물론 극우 제외.) 언어에 녹아 있는 Sexism 에 대해서는 현재 고국의 성대결구도가 너무 극단적이라 sexism에 반대하는 의견을 자유롭게 폈다가는 ‘메갈’ ‘메퇘지’ ‘Girls do not need a prince’ 하면서 조롱당하기 십상이라 (반대로 sexism 별로 없다고 혹은 무지한 주장을 자유롭게 펴는 남성이 있으면 곧바로 ‘한남충’ 으로 조롱당하기 십상이다) 뭔 말을 못하겠다. 하지만 한 가지 적고 싶은 것은 차라리 이렇게 둘로 나뉘어져서 네가 빻았네 내가 빻았네 싸우는 것이, 한쪽이 일방적으로 루저녀/김치녀/된장녀/각종녀 붙어 가면서 후드려맞던 과거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극단으로 나누어 상대를 대상화하면서 싸우는 게 좋다는 건 아니지만, 개싸움 없이 인권이 갑자기 사과나무 밑에 툭 떨어졌던 사례가 어디 있기나 한가? 좋은 사회로 가는 과도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과도기는 위험한 시기이고, 위험한 시기엔 알아서 몸을 사리고 다치지 않아야 하는 것이지만…

개개인은 왜 좋은 사람이 아니겠냐만은, 한국어와 한국문화와 우리네 전통이 없어도 될 서열을 만들고 있다는 점. 그래서 좋은 사람조차도 무의식중에 옳지 못한 마인드셋으로 타인을 대한다는 점. 평생 한국에서 자라난 내가 ‘나이 많은 한국 남성’ 에게 영어로 말을 걸 때는 평범하게 말하고 있는데도 왠지 모르게 ‘버르장머리 없게’ 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게 비단 내 기분탓만은 아닐 것이다. ‘나이 많은 한국 남성’ 이 나와 대화를 할 때 늘 한국어를 선호하는 것도 기분탓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전 직장에서 ‘나이 많은 한국 남성’ 선배들과 영어로 대화할 때 김모 선배는 그냥 웃으며 넘겼지만 장난기 있는 전모 선배는 얘는 영어로 말하니까 더더욱 위아래가 없다고 직설적으로 농담을 던졌는데 그게 농담이었지만 실제로도 촌철살인이라 생각한다. 한국어는 위아래가 있어야 하는 언어고 그들에 의하면 나는 아래였으니까.

생각해 보면 나를 꼬박꼬박 유 주임님, 아니면 지영님 이라고 꼬박꼬박 존중하는 표현을 써줬던 보스는 심 팀장님 한사람밖에 없었다. 한국에 살 때는 너무 존대하니까 거리를 두시는 것 같아서 서먹하다.는 바보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분이 얼마나 소수였고 훌륭한 샘플이었는지 모르겠다. 심 팀장님 직전 보스가 여러 면에서 다양하게 최악이었는데 표현 면에서도 빠지지 않고 최악이었다는 점, 나를 매우 권위적이면서도 look down 하는 말투로 ‘유지영씨.’ 라고 불렀던 바람에 지금도 저 표현을 소스라치게 싫어하는 (표현 자체도 손아랫사람을 대하는 표현이 맞기도 하다) 부작용을 앓고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지만.